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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신곡에 비추어 본 현대 사회의 거짓과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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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의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의 3부 구성으로 인간 존재의 도덕적 여정을 서사화한 작품이다. 특히 지옥편의 제8층 '말레볼제(Malebolge)'와 제9층 '코키투스(Cocytus)'는 인간의 본질적인 타락, 즉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여기서 단테는 단순한 폭력이나 탐욕보다도 언어와 정체성을 통해 벌어지는 거짓말, 선동, 분신의 죄를 더욱 중하게 여긴다.

 

   말레볼제의 제10굴에는 거짓말과 마법을 사용해 사람들을 속인 자들이, 제8굴에는 이간질과 선동으로 공동체를 갈라놓은 자들이 처벌받는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언어가 사회적 신뢰를 해치고 인간성의 기반을 허물었다는 이유로 끔찍한 고통 속에 있다. 이와 같이 단테는 말의 힘, 특히 거짓된 말이 공동체에 미치는 파괴력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언어는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인 동시에 현실을 창조하는 행위이기에, 그것이 잘못 사용될 때 공동체는 내부로부터 무너진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제9층 코키투스, 그 중에서도 '주데카(Judecca)'에 해당하는 최심부다. 여기에 위치한 자들은 바로 배신자들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고의로 무너뜨린 자들이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그리고 유다 이스카리옷이 사탄과 함께 가장 밑바닥에서 영원히 얼음 속에 갇혀 고통받는다. 단테는 이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가장 악한 죄는 단순히 도덕적 위반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깨고 신뢰를 배반하며, 존재의 기반인 진실을 조작하는 것이다."("Peccatum gravissimum non est simpliciter praecepti moralis transgressio, sed relationes humanas frangere, fiduciam prodere, atque ipsam veritatis fundamentum adulterare.")

 

   이 분석은 오늘날의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 거짓 뉴스, 여론 조작, 신뢰 파괴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 허위 정보는 개인 간 신뢰를 해치고, 선동은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분신의 죄—SNS나 미디어 속 가짜 정체성으로 타인을 속이는 행위—역시 지금 우리 사회의 병리로 나타난다. 단테가 이러한 죄를 지옥의 최심부에 위치시킨 이유는 단순하다. 이는 인간성과 공동체의 토대를 뒤흔드는, 가장 구조적인 악이기 때문이다.

『신곡』은 이처럼 14세기적 맥락을 넘어선 예언서처럼 읽힌다. 언어와 정체성, 진실이라는 테마는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단테가 가장 깊은 지옥에서 벌한 자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경고한다. 진실을 등지고 공동체를 해치는 순간, 우리는 가장 깊은 어둠에 떨어질 수 있음을.

 

  오늘날 우리는 거짓말과 선동이 전 세계를 오염시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SNS를 통한 허위 정보, 정치적 분열을 조장하는 언론, 진실을 조작하는 알고리즘은 단테의 지옥이 상징했던 '인간의 타락'을 더욱 실감나게 만든다. 분열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신뢰를 해체하며,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단테는 이런 죄를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근본적 악으로 보았다.

특히 ‘분신의 죄’—즉 진실한 자아를 포기하고 가짜 정체성을 반복적으로 연기하며 타인을 기만하는 행위—는 오늘날의 가짜 뉴스, 이미지 조작, 정체성 왜곡과 밀접하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보이느냐에 집착하며, 진정한 자기 자신을 점점 잃어간다. 타인을 속이기 위해 스스로를 조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진실이라 믿는 대중들. 단테가 그런 자들을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두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곡』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진실이 무너진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단테의 지옥은 단순히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 진실을 저버린 인간이 결국 어떤 외로움과 고통에 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 자아의 분열, 공동체 붕괴라는 지옥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단테의 지옥보다 어쩌면 더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죄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여전히 유일한 나침반이다.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곳, 지켜야 할 중심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를 붙들고 무지의 자각을 통해 진리를 추구했듯, 우리도 진실과 공동체의 신뢰를 향해 항해해야 한다. 거짓이 넘치는 시대에 진실을 고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이며, 우리가 피해야 할 지옥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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