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키호테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17세기에 창조한 인물이다. 한때 나는 그를 순수한 열정의 화신처럼 여겼다. 낡은 갑옷을 걸치고, 녹슨 투구를 쓰고,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는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가 과연 영웅일까, 아니면 자기 착각에 빠진 비극적 존재였을까? 어쩌면 돈 키호테는 우리 안에 자리한 허영과 맹신, 현실 도피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새 돈 키호테를 닮아 있었다. 나 또한 나만의 진실과 정의를 붙잡고 살아왔다. 때론 나를 조롱하는 현실 앞에서 등을 돌렸고, 때론 누군가의 조언조차 듣지 않았다. 이상을 좇는 삶이라 믿었지만, 뒤돌아보면 그건 외면이자 고집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싸운 대상이 과연 진짜 괴물들이었는지도, 아니면 그냥 내 망상 속 풍차였는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현실은 언제나 단단하다. 회사에서는 꿈보다 성과를 요구하고, 가정에서는 이상보다 안정이 우선시된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바깥세상을 향해 창을 들었다.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지배했고, 결국 나는 소진되어 갔다. 주변은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산초 판사 같은 현실적인 충고는 내게 방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옳다고, 내가 맞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믿음이 참 무서웠다.
돈 키호테는 결국 패배했다. 그가 싸운 대부분의 전투는 그저 혼자의 착각이었고, 그 결과는 늘 상처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정신이 돌아와 모든 것을 후회하며 생을 마감한다. 나는 그 장면이 그렇게 가슴 아팠다. 너무 늦게 깨달은 진실은 오히려 잔인하다. 우리는 그렇게 끝나고 싶지 않기에, 때때로 돈 키호테가 아니라 산초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제 조금씩 나를 내려놓는다. 이상은 여전히 소중하지만, 그것을 위해 모두를 밀어내는 삶은 고립을 낳는다. 나만의 정의를 외치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진심을 흘려보냈을까.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현실을 외면한 채 달려간 길은 나를 성장시켰을까, 아니면 상처만 남겼을까. 돈 키호테처럼 나도 나만의 전장을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좀 더 겸손해지고 싶다. 삶은 이상과 타협의 연속이고, 때론 물러나는 것이 이기는 것일 수 있다. 돈 키호테가 전부는 아니다. 때론 산초처럼 현실을 인정하고, 때론 다르지만 귀 기울이며, 그렇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게 나를 위한 길이고,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이상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이제 더는 그 이상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다. 이상은 방향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디쯤 서 있는가이고,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가이다. 돈 키호테는 혼자였지만, 나는 혼자이고 싶지 않다.

우리 안엔 여전히 돈 키호테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가 지배하게 해선 안 된다. 그는 우리 안의 열정일 수도 있지만, 고집과 맹신일 수도 있다. 나는 그를 존중하되, 경계하고 싶다. 그래야 내가 부서지지 않고, 진짜 현실과 마주 설 수 있을 테니까.
돈 키호테는 위대했지만, 그 위대함은 때론 무책임했다.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작고 현실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때론 물러서고, 때론 타협하고, 그러면서도 나만의 중심은 지키는 그런 사람. 이제 나는 또 다른 전투가 아니라, 나와 타인을 위한 공존의 삶을 꿈꾸려 한다.
그게 아마 진짜 용기일지도 모른다. 이상을 외치기보다, 오늘을 지키는 삶. 그것이 나의 새로운 기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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