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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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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잊지 마"라는 말의 쓸쓸함

작가 오마르의 이야기처럼, 우리 삶에는 가슴을 쿡 찌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특히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그렇죠. "너는 친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아니야"라는 오마르 작가의 한 마디는 어쩌면 우리의 보편적인 경험을 건드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겨우 만 명을 넘겼을 때, 15년 만에 중학교 동창에게 연락을 받으셨다는 에피소드처럼요. "여, 해민아, 잘 지내지? 요즘 여기저기서 소식 들리더라. 유명해져도 나 잊으면 절대 안 된다."

 

이런 연락을 받았을 때의 그 묘한 감정은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겁니다. 근 15년 동안 서로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잊으면 안 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당황스러움과 함께, 어쩌면 잊고 살았던 미안함이 뒤늦게 밀려올 수 있습니다. 그 친구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것조차 몰랐는데, 그 친구는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은 씁쓸한 반성을 안겨줍니다.

 

"나는 그 친구의 삶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데, 그 친구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니." 이 지점에서 가슴이 따끔해지는 경험은 단순히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넘어섭니다. 작년에 아버지의 부고를 몇 년 연락도 하지 않았던  지인들에게 돌렸을 때 따끔따끔 , 반성을 하게 되더군요. 삶에 치여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소중했던 인연들을 잊거나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문득, 그들이 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혹은 그들의 삶에 내가 부재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관계의 단면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나만 모르는 관계의 온도차'**를 경험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사람이 흐릿한 기억 속의 한 조각일 때 오는 그 쓸쓸함. 기술의 발전으로 SNS를 통해 과거의 인연들이 쉽게 연결되면서, 이러한 감정은 더욱 빈번하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좋아요' 하나, 의미 없는 '댓글' 하나가 관계의 깊이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잊지 마"라는 말 속에는 간절함과 서운함, 그리고 과거에 대한 아련함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우리는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잊고 살았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타인의 기억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 기억에 내가 상응하는 만큼의 관심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때때로 아프게 다가옵니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이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관계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줍니다. 내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인연들은 없었는지, 나의 관계망은 진정으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연결로 이루어져 있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존재의 의미를 상기시켜주는 작은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또 다른 "잊지 마"라는 말이 가슴을 따끔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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